[개발자 이야기 #6편] 일본 개발자 생활 3년만에 귀국
귀국 준비
일본에서 일한 지 3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수 있는 기간이 아닌가 싶다. 난 정확히 만 3년 만에 귀국하였다. 귀국해서는 왜 일본에서 잘 일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는지 질문도 많이 받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향수가 아닌가 싶다. 그때 당시에는 일본에서 잘 적응했기 때문에 부정했지만, 내 깊은 곳 한곳에서는 고국에 대한 그리움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내 장래에 대한 걱정이었다. 아무리 내가 일본에서 잘하고 인정받았을 받았을지언정 난 그곳에서 외국인 노동자였다. 외국인으로서 일본어를 잘하게 되어도 그들보다 못했을 것이고, 진급하더라도 그들보다 늦어질 것이라는 거다. 또, 내 아내와 그때는 태어나지 않았지만 내 아이가 일본 사회에서 아무 탈 없이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다. 여러 고민 끝에 아내에게 조심히 의논하였고, 내 아내는 고맙게도 내 편이 되어 응원해 주며, 고국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나와 결혼하여 힘들게 일본까지 따라와 줬는데, 흔쾌히 내 뜻을 따라준다고 하니, 너무나 고마웠다.
그렇게 우리는 귀국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살림살이를 중고로 처분하며, 여러 가지 서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살림살이들은 같은 한국인에게 파는 게 비교적 쉬웠다. 일본에 중고로 물건을 팔 수 커뮤니티 사이트가 없었고, 업자에게 넘기에는 너무 헐값에 팔아야 했기에, 일본에 있는 한국인이 모이는 사이트에 물건들의 사진과 함께 판매 글을 올렸다. 여러 번의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큰 물건들을 다 처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국제 택배로 10여 개의 박스에 옷가지 등 필요한 물건들도 우편으로 보내는 준비를 하였다. 일본에 들어올 당시에는 나 혼자 케리어 한개만 가지고 들어왔는데, 돌아가려고 할 때는 아무래도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내 아내 물건도 포함이 되니 결코 적지 않았던 거 같다.
업무 정리
한국에 돌아가면 제일 걱정 중 하나는 내 경력 문제였다. 개발자로 내 경력을 과연 한국에서 인정해줄지가 의문이었다. 그때 당시에 듣던 말로는 한국에서의 개발 스펙과 문화가 일본과 달라 쉽게 인정해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귀국을 준비한 이유도 이 문제였는데, 일본에서는 적응이 된 후로는 정말 큰 스트레스 없이 일을 했었는데,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영영 한국에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게 아닐까? 라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일본에 처음 들어가 당시에는 일본에서 영주권을 받고 살 각오로 들어갔었다. 하지만 내가 외국인이라는 페널티를 극복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난 한국에서 최대한 인정받으려면 철저히 서류로 근거 자료를 만들어 가야 하겠다고 생각됐다. 그래서 알게 된 게 아포스티유(apostille) 서류이다. 아포스티유란? 한 국가의 문서를 다른 국가에서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확인(Legalization) 절차 또는 그에 대한 국제 협약을 말한다. 즉, 일본에서 받은 경력 증명서를 한국에서 인정받기 위해 번역해서 공증받는 거로 생각하면 된다. 이 문서를 준비하고 위해 난 알아보고 또 알아봤다. 그래서 신주쿠에 가서 비교적 적지 않은 금액을 지불하고 서류를 준비할 수 있었다.
귀국을 위해서는 원래 속소 회사와 현재 근무 중인 고객사 또, 중간에 영업 시에 모두에게 내 귀국 의사를 전달해야 했다. 먼저 원래 소속 회사에 연락하고 만나서 내 의사를 전달하니, 날 설득하고 또 설득하였다. 내가 현재 겪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물었고, 회사에서 지원을 최대한 하도록 노력을 해줄 것이니 더 생각해 봤으면 하는 것이었다. 난 단호했다. 이미 충분히 생각은 했었고, 마음을 굳었기에 번복할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중간 영업 사의 담당자를 만나 귀국 의사를 전하니 무척 아쉬워했다. 내 원소속의 회사가 마음에 안 들면 본인들 회사와 개인으로 다시 계약하거나 본인들의 아예 입사하길 원한다고까지 하였다. 그때는 조금은 흔들렸다. 일본에 가서 원소속 사람들보다 중간에 회사인 이 회사 사람들과의 교류가 더 많았고, 나에 대한 배려도 많았기에 무척 아쉬웠다. 내가 만난 일본인 중에 이 사람들이 내게 잴 해줬던 사람들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고, 마지막으로 고객사에서는 내 소식을 듣고, 크게 별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게 송별회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뜻밖이었다. 여태 지나갔던 여러 계약 사원들은 고객사에서 따로 그런 자리를 마련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수 인계
업무를 하나하나 마무리를 해가며, 인수인계도 같이 진행이 되었다. 내가 퇴사를 의사를 전달한 이후로 2개월간에 마무리가 진행되었다. 내 이후로 내 업무를 맞게 될 사람은 나와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일본인이었다. 원래는 다른 업무를 진행하기도 되어 있다가, 내 퇴사로 인해 갑자기 업무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나로 인해 발생한 거라 꽤 미안하기도 했지만, 내가 인수인계를 하는데 있어서는 비교적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그 친구도 친분이 있다 보니 내게 많은 부분을 상세히 많이 물어봤다. 내가 퇴사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기간이 있어, 한번 더 인사를 하려 잠시 사무실에 들렸는데, 그때도 내게 질문 사항을 정리해 와서 물었다. 난 최대한 답변해줬다. 그때 들었던 말중에 “김상 지금까지 어떻게 일을 하셨길래, 고객사에서 까다로운 요구하는게 많네요.“라고도 하였다. 요구를 하면서 “김상은 이 정도는 늘 다 해주었기에 해주길 바란다고 했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난 고객에서 원하는 항목을 말하면, 크게 안된다고 한적은 없었던거 같다. 오히려 상세히 적어주는 명확한 요구사항이 업무하기 편했다. 나 대신에 새로 업무를 받게 되어 적응 되기 전이기도 했겠지만, 매사에 처음에는 뭐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일본인들의 특유의 성향 문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인수 인계는 문서를 최대한 남겼다. 아무리 말로 설명을 해봤자, 익숙하지 않으면 곧 잊어버릴 것이고, 내가 귀국을 해버리면 연락도 쉽게 되지 않을 것이니, 내가 해 줄 수 있는건 문서 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문서는 어느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정도로 작성하려고 노력하였다. 일본어를 문장 실력이 그렇게 좋지 못했기 때문에 어렵게 문장을 작성할 수도 없었기에 대부분의 문장은 간결하게 끝냈을 것이다. 그리고 문장보다도 스크린샷을 많이 넣고 한 항목마다 뭐든 남기려고 하였다. 거의 따라해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로 작성하였다. 그러다 보니 분량이 많았다는데, 큰 맥락은 적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고, 코드에 대한 코멘트를 많이 남겼다. 분기문이나 반복에 대해 어떤 로직인지 뭘하려는 로직인지 대해 상세히 기록하였다. 또, 모든 클래스에 용도를 모두 작성하였다. 코드에 저자인 내 이름도 같이 많이 남겼었는데, 지금은 세월이 많이 지나서 흔적도 없어졌을 것이다.
고객사의 송별회
내 송별회는 총 3번에 걸쳐서 이루어졌다. 원소속의 회사에서는 간단히 식사하는 것으로 마무리했었고, 중간 회사에서는 이자카야에 가서 여러 담소를 나누는 자리가 되었다. 그러고, 고객사와의 어려운 자리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제일 기억에 남는 자리였다. 특이한 음식을 많이 먹어서였는데, 돼지 사시미, 닭 사시미, 그리고 레바(レバ)라고 부리는 닭 간 등을 먹었다. 일부로 내가 일본에서 못 먹어 봤을 것만을 주문해준 거였다. 일본에서뿐 아니라 생전 처음 먹어본 음식들이었고, 생각보다 맛있게 맛을 음미해서 먹어서 그런지 아직도 내 머릿속에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고객사의 사람들과 대화에서 내가 질문을 하였는데, “나와 처음 일하는 때는 일본어를 제대로 못 해서 힘들지 않으셨냐?“거였다. 처음에 고객사를 대할 당시에는 일본어를 못했던지라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고, 어느 정도 돼서는 내가 프로젝트 리더가 되면서 매주 내가 브리핑을 진행했었던 지라, 내가 말을 많이 했어야만 했던 상황이었다. 말을 하면서 차차 연습이 되면서 일본어 실력이 좋아져서 윤활하게 말을 했었지만, 처음에는 이상한 일본어를 많이 했었을 것이다. 그때는 고객사에서 내 일본어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문제시하지 않았었기에 더 고맙기도 한 점이었다. 고객사에서는 내 질문에 대답해 주길, “전 김상보다 더 일본어는 못하는 사람들과 일을 해봤었어요. 힘들었다면 그때가 더 힘들었지 김상의 일본어는 이해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해줬다. 정말 고마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고객사는 “여태 많이 고생하셨고, 업무를 열심히 해줘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작별의 인사를 해주었다.
드디어 귀국
모든 살림살이가 정리되고, 회사도 마무리가 되면서 난 귀국 길에 나섰다. 귀국 마지막 날, 공항으로 향하는 전철과 공항버스를 타면서 늘 봤던 골목과 풍경들,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쳐 가던 사람들이 내게 왠지 다르게 느껴졌다. 내가 선택한 귀국이지만 앞으로 내가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외국에서 살아보는 날이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아서 그런 건지, 아쉽게 느껴졌다.
난 그렇게 일본에서의 개발자 생활을 마무리하고 내 조국인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에서 개발자로 3년을 지내면서 내가 만난 대부분의 일본인은 내게 배려심이 좋았고, 호의적이었다. 역사적으로는 일본이 한국에 대해 수많은 만행을 저질렀고, 지금 정치적으로 일본과 한국은 그다지 좋은 관계는 아니지만, 내가 격은 일본과 내가 만든 일본인들 결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의 기억은 좋게 남아 있고, 아직도 그들과 연락하고 있으며, 매번 변함없이 날 예전의 김 상으로 대해 주고 있어 고맙기만 하다.
일본에서 개발자로 근무했던 이야기는 이걸로 맞히려고 합니다. 더 많은 얘기가 있었겠지만, 기억이 나는 것 중에 글 소재로는 부족함이 있어 일단 보류하려고 합니다. 차후에 생각이 나고 글 소재로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계속 쓰고는 있는데, 제 글솜씨에 부족함이 많이 느껴지네요. 이러다 보면 제 글솜씨도 좋아질 거라 믿고 싶네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