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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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꽃
첫눈이 내린 아침
내 발자국을 새기며
산책하는 중이었다
금이 간 담장 위에서
홀로 떨고 있는
장미 한 송이를 만났다
새파랗게 질린 하늘을 이고
된바람에 흔드리는 가녀린 얼굴
- 이년이 죽어야 에미가 살 수 있지!
멀건 미음을 떠먹이며 주문처럼 외우던 할머니
두어 달 연명하던 누이는
백일도 못된 섣달 이렛날 둘둘 강보에 쌓여 뒷산으로 지고 말았다
삭풍이 기승을 부리던 날이다
시린 시절 아프게 저버린
가엾은 누이야~
어룽비치는 얼굴 두 손 벌려 감싸니
기다렸다는 듯 떨어지는 붉은 꽃송이!
- 윤태근